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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에는 사람의 눈빛이 제철



그의 시는 경험 속에서 상상을 포획한다. '낙서'라는 시도 경험으로 썼다.


"어느 날 식당에 갔는데, 너무 더럽고 누추한 거에요. 보니까 식당 아주머니가 중풍을 앓으셔서 한 쪽이 마비가 된 거에요. 누가 봐도 요리를 못하실 것 같은데 옆에 아저씨가 앉아 계세요. 아저씨가 아주머니에게 계속 물어보면서 음식을 만들어요. '이 다음에 뭐 넣어? 또 뭐 넣어?' 그게 앞으로 먹을 사람 입장에서는 불안할 수도 있는데, 저는 좋았어요.


물론 시 쓴다고 세상을 항상 따듯하게 볼 순 없지만, 이 장면이 내 인생에 있어서 참 좋은 장면이다.

물론 맛 없는 음식을 먹게 될 지도 모르지만. 작은 분식집이라 보니까 여고생들이 벽에 연예인들 이름을 잔뜩 써놨더라고요. 저도 낙서를 해놓고 나왔어요. '봄에는 사람의 눈빛이 제철이다.'




-




봄은 문 앞까지 와서 고갯짓만 살짝 하고 도망가버리는 열두살 여자아이 처럼.

언제 오나 그렇게 기다렸건만 사실은 우리 옆에서 고운 꽃들을 입고는 늘어져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는 것이었다. 

악 소리가 날 만큼 차가운 공기에 헐레벌떡 내려왔던 부암동의 어느 골목길은 이제 하얗게 뿜어져나오는 입김 없이 밤 하늘을 바라볼 수 있게 되었고, 우리는 창가에 앉아 창문을 열고 내리는 빗소리를 즐길 수 있게 되었다. 

시답잖은 변화. 그러나 아무렇지 않게 넘기기엔 우리들은 순간을 소중히 여길 줄 알기에, 의미 없는 의미를 부여한다. 


손을 꼭 부여잡고 꼬불 꼬불한 길을 하염없이 내려 걸어오다 우연히 그가 궁금히 여겼던 한옥을 개조한 작은 술집 앞에 다다르게 되었는데, 그 순간 어디선가 종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나는 가끔 강렬한 기억이 덮쳐올 때 순간을 멈추는 상상을 하곤 했는데.

종소리가 들려오던 그 순간은 홀연히 귀신이라도 다녀간 듯 모든것이 정지된 것 처럼 차원과 공간이 소용없는,

마치 누군가 시간을 멈춘 듯 그와 내가 잡고 있는 손의 따듯한 감촉만이 느껴질 뿐이었다.


누구보다 기다리던 봄이 우리의 앞에 치맛자락을 펄럭이며 잠시 나타났다 도망쳐버리기라도 한 듯. 

그날 밤의 공기와 불어오던 바람의 온도는 부정할 수 없는 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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