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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는 오랫만에 비가 왔다. 요 며칠 지속된 무더위에 일 마치고 부랴부랴 집에 도착하니 나에게서도 소금냄새가 났다.

집에 있는 식물들에게 물을 주지 않은지 몇주가 된 것 같다. 어제는 집에 들어가기전 부터 오늘은 꼭 잊지말아야지. 잊지말아야지 하면서도, 또 잎사귀 한번 만져주고는 물 주는걸 깜박하고 말았다. 묘하다. 한 삼주는 되었으려나, 죽어가고 있다고 속삭이는 것들을 내가 듣지 못했기 때문일지도.


-

어제는 비가 오는 날이었다. 


차 문을 열고 그의 옆에 앉았는데 평소같지 않은 느낌이 들었다.

그와 나는 한층 가라앉아있었는데, 정말로 오랜만에 정신적으로도 신체적으로도 작은 미동 하나 없이 가만히 있는 그 순간 사랑스러운 마음이 물결처럼 넘쳐나서 입을 맞추지 않을 수 없었다. 습기찬 공간 안에서는 그의 살결 냄새가 났고, 입을 맞추니 그의 체취가 바다같이 밀려왔다. 

바깥에는 여전히 비가 내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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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얀 국화가 피어 있는 날이었다.

그 짙은 화사함이 어쩐지 불안했다.

그날 밤 늦게 조용히

네가 내 마음에 다가왔다.


나는 불안했다.

아주 상냥히 네가 왔다.

마침 꿈속에서 너를 생각하고 있었다.

네가 오고, 그리고 동화에서처럼

은은히 밤이 울려 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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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에는 사람의 눈빛이 제철



그의 시는 경험 속에서 상상을 포획한다. '낙서'라는 시도 경험으로 썼다.


"어느 날 식당에 갔는데, 너무 더럽고 누추한 거에요. 보니까 식당 아주머니가 중풍을 앓으셔서 한 쪽이 마비가 된 거에요. 누가 봐도 요리를 못하실 것 같은데 옆에 아저씨가 앉아 계세요. 아저씨가 아주머니에게 계속 물어보면서 음식을 만들어요. '이 다음에 뭐 넣어? 또 뭐 넣어?' 그게 앞으로 먹을 사람 입장에서는 불안할 수도 있는데, 저는 좋았어요.


물론 시 쓴다고 세상을 항상 따듯하게 볼 순 없지만, 이 장면이 내 인생에 있어서 참 좋은 장면이다.

물론 맛 없는 음식을 먹게 될 지도 모르지만. 작은 분식집이라 보니까 여고생들이 벽에 연예인들 이름을 잔뜩 써놨더라고요. 저도 낙서를 해놓고 나왔어요. '봄에는 사람의 눈빛이 제철이다.'




-




봄은 문 앞까지 와서 고갯짓만 살짝 하고 도망가버리는 열두살 여자아이 처럼.

언제 오나 그렇게 기다렸건만 사실은 우리 옆에서 고운 꽃들을 입고는 늘어져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는 것이었다. 

악 소리가 날 만큼 차가운 공기에 헐레벌떡 내려왔던 부암동의 어느 골목길은 이제 하얗게 뿜어져나오는 입김 없이 밤 하늘을 바라볼 수 있게 되었고, 우리는 창가에 앉아 창문을 열고 내리는 빗소리를 즐길 수 있게 되었다. 

시답잖은 변화. 그러나 아무렇지 않게 넘기기엔 우리들은 순간을 소중히 여길 줄 알기에, 의미 없는 의미를 부여한다. 


손을 꼭 부여잡고 꼬불 꼬불한 길을 하염없이 내려 걸어오다 우연히 그가 궁금히 여겼던 한옥을 개조한 작은 술집 앞에 다다르게 되었는데, 그 순간 어디선가 종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나는 가끔 강렬한 기억이 덮쳐올 때 순간을 멈추는 상상을 하곤 했는데.

종소리가 들려오던 그 순간은 홀연히 귀신이라도 다녀간 듯 모든것이 정지된 것 처럼 차원과 공간이 소용없는,

마치 누군가 시간을 멈춘 듯 그와 내가 잡고 있는 손의 따듯한 감촉만이 느껴질 뿐이었다.


누구보다 기다리던 봄이 우리의 앞에 치맛자락을 펄럭이며 잠시 나타났다 도망쳐버리기라도 한 듯. 

그날 밤의 공기와 불어오던 바람의 온도는 부정할 수 없는 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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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십대를 벗어나고 어느 정도 지난 뒤, 슬픔이 지긋지긋해졌다. 이상한 반항 심리가 솟구쳤다. 왜 슬퍼해야 하지? 해사한 일들. 참새같이 짹짹거리는 일들로 웃고 즐기는 날들을 왜 향유하면 안 되지? 심각하게 생각하지 말고. 행복과 안녕을 위해 생산적인 감정만 만들어내면 안 될까?

나는 어느 순간 슬픔에 대해 적대적인 감정까지 갖게 되었다. 슬픔을 내 인생에서 추방시키고 싶었다. 슬픔은 슬픔이란 이유만으로 유죄였다. 회사를 다녀 돈을 많이 벌고 싶었고, 보란 듯이 평안한 얼굴과 마음가짐으로 웃고 싶었고. 시를 위해서가 아니라 제대로 돈을 벌며 살기 위해 시간을 쓰고 싶었다. 10년에 걸쳐 써온 일기장과 습작 노트들을 죄다 갖다버렸다. 가지고 있기엔 너무 무겁고 축축했다. 벗어나고 싶었다. 슬픔이 내 발끝에도 오지 못하도록. 틈을 주지 않았다. 바쁘게 살았고, 웃었고, 즐겁게 지내려고 노력했으며, 회사도 열심히 다녔다. 슬픔이 잠시 내 앞에 앉으려고만 해도 벌떡 일어나서 다른 곳으로 가버렸다. 기회를 주지 않았다. 생각을 단순하게 했고, 얼마 동안 시도 쓰지 않았다.




그렇지만 완벽하게 슬픔을 차단한 인생이란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회의가 들었지만 여전히 슬픈 감정은 두려웠다. 슬픔에 대한 역치가 낮아져 있었다. 




꽤 행복한 얼굴을 '겨우'만들어가지고 부암동에 놀러간 어느 날. 우연히 윤동주 박물관에 들리게 되었다. 윤동주라, 윤동주. 내가 슬픔에 젖어 있던 많은 날 '모두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라는 구절에 대해 꽤 오랜 시간을 견뎠었지. 박물관에 전시된 자료들을 보다 나는 어느 시 앞에서 벼락을 맞은 것 같은 기분을 느꼈다. 피하고 싶어 오랜 시간을 공들였는데, 결국 만나버린 인연. 혹은 숙명 같았다. 





슬퍼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슬퍼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슬퍼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슬퍼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슬퍼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슬퍼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슬퍼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슬퍼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영원히 슬플 것이요.


-윤동주 '팔복' 전문






시인은 여덟 번에 걸쳐 '슬퍼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라고 말하고 있다. 마치 저주처럼. '저희가 영원히 슬플 것이오'라고 마지막을 못박고 있었다. 세로글씨로 또박또박 쓰여 있는 윤동주의 자필을 보면서. 가난한 시인의 방과 고통스러운 시인의 생 앞에 벌거벗고 서 있는 기분이 들었다. 부끄러웠다. 눈물이 날 것 같은 걸 애써 참았다. 자고로 슬퍼하는 자. 대신 울어주는 자가 시인의 숙명인 것을 윤동주 시인은 척박한 환경에서도 받아들이며 긍정했는데 나는 벗어나기 위해 도망치고 피해 다녔다. 슬퍼하는 일 외에 시인이 할 수 있는 일이 뭐가 있단 말인가? 이 시 앞에서 작게나마 깨달음을 얻는 나는 윤동주의 시 앞에서 다짐했다. 슬픔을 두려워하지 않기로. 슬퍼하는 일을 오히려 복되고 귀한 일로 생각하기로.




사랑이 질병인 것처럼. 내 이십대는 질병과 같았다. 슬픔도 가장 격렬한 슬픔만. 아픔도 가장 치명적인 아픔만 골라 껴안았다. 다시 돌아갈 수 없는 그 시절의 슬픔은 폭죽처럼 터져버렸고, 이미 사라졌다. 시간이 갈수록 폭죽에 대한 기억도, 귓가를 울리던 굉음도 희미해질 것이다.




그러나 한 시절 사랑한 것들과 그로 인해 품었던 슬픔들이 남은 내 삶의 토대를 이룰 것임을 알고 있다. 슬픔을 지나온 힘으로 앞으로 올 새로운 슬픔까지 긍정할 수 있음을. 세상은 슬픔의 힘으로 아름다워진다는 것을 이제 나는, 겨우. 믿는다.





슬퍼하지 않으면 우리는 아이들을 키울 수 없을 것이고, 힘없는 자들을 가여워하지 않을 것이며, 나누지 않고 사랑하지 않을 것이다. 무엇보다 슬퍼 하지 않으면 더이상 어떤 시나 노래도 태어나지 못할 것이다.


우리는 믿어야 한다. 슬퍼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슬픔은 슬픔대로 즐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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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에 몇번이고 당신의 이름이 적힌 메시지함을 찾으려 스크롤을 아래로 내릴 때,
깊은 곳에서부터 미세하게 떨리는 마음은 대체 언제 쯤 가라앉을 수 있을까. 

우리는 서로 다른 곳에서, 다른 방식으로 서로를 추억하며 그리고 있나보다. 

그러나 나는 안다. 알고있다.
당신이 나를 어떤 모습 어떤 느낌으로 기억하고 있을 지. 짧은 시간이었지만 단 한번도 당신의 마음을 탓한 적이 없었다. 
아마도 그리워하는 마음이 반, 미안한 마음이 반일거다. 달빛이 쏟아지는 그 창 아래서 세상모르게 곯아떨어진 내 모습을 보며 수많은 생각들을 삼켰던 것을 나는 알고 있다. 귀 뒤로 머리칼을 넘겨 주며, 입 밖으로 차마 꺼내지 못한 토막난 단어들을 삼키고 가슴 속 저 밑바닥까지 꾹 꾹 눌러담았겠지. 
나를 쓰다듬는 그 손가락 끝 하나 하나 에서 나오지 못하고 메아리치는 단어들을, 이야기들을 온전히 느낄 수 있었다. 나의 볼 위를 쓰다듬던 떨림들은 단 한가지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당신이 행복했다는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나와 함께한 순간들을 기억하며 지금 또한 행복해하고 있다는 것도. 
나는 당신의 마음을 알고 있다. 
그러기에 미안해 하지 않아도 된다며, 그럴 수만 있다면 당신의 머리를 내 가슴팍에 뭍고는 손가락 사이로 흘러내리는 머리칼을 쓰다듬으며 속삭여주고 싶다. 사연들은 뒤로 한 채, 나는 당신을 안을 수 있었음으로 충분히 행복하다고. 혹 자는 이런 마음들이 나의 착각 또는 자기합리화라고 말할 지도 모르겠다. 나의 마음은 믿되, 상대방의 마음은 확신하지 말라며 입바른 소리를 할 지도 모르겠다.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오로지 나의 감정에 있어서의 확신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
당신의 눈매가 아름답다 이야기 한 적이 있었다. 당신의 눈은 마치 할 이야기가 있으나 어떤 연유로 홀로 모든 것을 삼켜 버린, 고독함이 깃들어 있는 듯 했다. 눈꼬리와 속눈썹이 아래를 향하고 있는것이 마치, 장마가 온 뒤의 물기를 가득 머금은, 이름없는 잎사귀 같았다. 듣고 싶은 이야기를 해 주지 않는다며 졸라 댈 때, 마음에 들지 않아 조금은 신경이 곤두 선 당신의 눈초리를 보는 것이 좋았다. 마주보며 같은 선상의 시선을 공유하는 것 보다 나의 아래에서, 네가 나를 올려다 보는 그 시선이 좋았다. 당신의 눈빛에는 순간의 무게가 실려있었다. 이렇게 잊혀져 가는 것이 싫고, 떠올리다 보면 정말로 네가 그립다. 






-
그러나,
당신의 부재로.
나는 사소한 것들이 아름답게 보이기 시작했다. 함께했던 것들을 이제는 홀로 즐기며. 좋은 글귀를 보면 그 언젠가 전할 수도 있겠다는 마음으로 한 귀퉁이에 고이 간직해 둘 줄 아는 사랑스러운 마음이 생겨났다. 봄이 오는 것을 느끼며 그토록 함께 하고 싶었던 계절이 찾아옴에 조용히 기뻐할 줄 아는 자그마한 여유 또한 가지게 되었다. 
 
어떻게 이런 마음을 가질 수 있을까.
그건 아마도, 당신이기에 가능한 것이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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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적 밟기. 


요 며칠간의 나의 발길은 마음이 이끄는 대로 향했는데, 나는 이러한 현상을 '흔적 밟기'라 이야기하겠다.




-

그동안 새하얀 눈 밭을 성큼성큼 걸어 나갔었다면, 이제는 그 발자국을 따라 조심스레 나의 발을 겹쳐 본다. 

너무도 오랜만에 내리는 눈이 반가워 무턱대고 앞으로 뛰어 나갔었던 기억. 아무도 발 들이지 않았던, 끝이 없이 하얗게 펼쳐진 세상을 보며 마치 어린아이처럼 즐거워 했던 순간이 있었다. 그리고 시간이 흐른 후 나는 다시금 그 장소를 찾게 되었는데, 앞으로 나아갔던 발자국도 당시의 풍경들도 그대로인 것이 아닌가. 허나 당시에 꽃송이 처럼 날렸던 눈발들은 모두 그치고 그 곳은 완벽한 침묵과 고요함으로 나를 맞이했다. 


눈길 위의 푹 파인 발자국들을 따라 천천히 걸으며 생각했다. 

제대로 보지 못했던 주변의 풍경들은 여전히 그대로의, 그러나 새로운 모습으로 나를 반겨주었다. 

당시에 나를 덮쳐왔던, 눈 앞을 아리게 했던 순백의 결정들이 가라앉은 뒤라 그런지 그곳은 더욱 더 넓고 깊은 모습을 가지고 있었다. 

이토록 아름다웠던 곳을 왜 그 순간에는 모두 알아차리지 못했을까. 

나는 감정의 홍수들을 마음껏 만끽했다. 그리고는 다시, 평온함이 찾아왔다. 




-

흔적 밟기를 하며 휴일 오전, 나는 아무런 계획없이 교보문고에 들렀다. 평소라면 관심 가지지도 않았을 한 귀퉁이에 지나가던 나의 발길을 붙잡던 사진집이 있었는데, 정말로 언젠가 본 적이 있었던 느낌이 드는거다. 그리고는 마치 파리의 서점에서 바스키아의 책을 봤을때와 비슷한 기분이 들면서 분명히 당신이라면 그냥 지나치지 않았겠지, 라는 생각이 들었다.

언젠가 그에게 바람 속의 남녀가 코트 깃을 부여잡고 키스를 나누는 사진을 받은 적이 있었는데, 마치 다른 듯도 같은 듯도 하여 한참을 사진 앞에서 움직이지 못하고 서 있었다. 그리고 결국 나는 그 사진들을 품에 안고 돌아왔다. 


책의 비닐을 벗기며 내가 왜 이 사진들에 끌렸을까. 문득 떠오른 호기심에 작가의 작품들을 검색해보며 피식 웃지 않을 수 없었다. 파리 출신의 로베르 두아노. 나는 그의 사진을 본 적이 있었다. 말로서는 설명할 수 없는 것들이 있다. 이제 나는 당신의 눈을 가진 듯, 네가 무엇을 시야와 마음에 담는지 알 수 있다. 





-

기억하고 싶은 순간들을 글 또는 사진으로서 간직해 두는 버릇이 있었기에 다행이라 생각했다.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 구름위에 떠 있는 기분이라 했었다. 생각하고 또 생각하여 한 밤중 꾹꾹 눌러썼던 이야기들.

가슴이 뛰었던 순간을 짧은 글귀로나마 표현하여 전할 수 있었음이 다행이라 생각했다. 

나의 사랑에 빠진 순간을 다시금 돌이켜 볼 수 있음에.

아직도 그때의 시간과 공기. 나누었던 눈빛들을 생각하면 마치 심장이 부풀어 오르는 느낌마저 든다.

가슴이 미어질 듯한 아픔이 아니다. 왜일까, 너는 나에게 지금까지도 봄이다. 그 순간은 단 한번도 차가운 바람이 분 적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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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끝이고 겨울도 끝이다 싶어 

무작정 남해로 간 적이 있었는데요

 

거기는 벌써 봄이 와서 

농어도 숭어도 꽃게도 제철이었습니다

 

혼자 회를 먹을 수는 없고 

저는 밥집을 찾다 

근처 여고 앞 분식집에 들어갔습니다

 

몸의 왼편은 겨울 같고

몸의 오른편은 봄 같던 아픈 여자와

늙은 남자가 빈 테이블을 지키고 있는 집

 

메뉴를 한참 보다가 

김치찌개를 시킵니다

 

여자는 냄비에 물을 올리는 남자를 하나하나 지켜보고

저도 조금 불안한 눈빛으로 그를 봅니다

 

남자는 돼지비계며 김치며 양파를 썰어 넣다말고 

여자와 말다툼을 합니다

 

조미료를 더 넣으라는 여자의 말과 

많이 넣으면 느끼해서 못 쓴다는 남자의 말이 끓어 넘칩니다

 

몇 번을 더 버티다 

성화에 못 이긴 남자는 

조미료 통을 닫았고요

 

금세 뚝배기를 비웁니다 

저를 계속 보아오던 두 사람도 

그제야 안심하는 눈빛입니다

 

저는 휴지로 입을 닦다말고는 

아이들이 보고 싶다, 좋아한다, 사랑한다, 

잔뜩 낙서해놓은 분식집 벽면에

 

봄날에는

'사람의 눈빛이 제철'이라고 

조그맣게 적어놓았습니다

 

 

낙서, 박준







당신에게 들려주고 싶은 구절,

봄날에는 '사람의 눈빛이 제철' 이라고 조그맣게 적어놓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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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문제.



사랑하는 것은 쉬울지 몰라도 가슴으로 모든것을 감싸안아준다는건 생각보다 복잡한 문제다.

그러나 그 어떤 이유 따지지 않고도 보일 수 있는 유일함이니

나눠줄 수 있다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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