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십대를 벗어나고 어느 정도 지난 뒤, 슬픔이 지긋지긋해졌다. 이상한 반항 심리가 솟구쳤다. 왜 슬퍼해야 하지? 해사한 일들. 참새같이 짹짹거리는 일들로 웃고 즐기는 날들을 왜 향유하면 안 되지? 심각하게 생각하지 말고. 행복과 안녕을 위해 생산적인 감정만 만들어내면 안 될까?
나는 어느 순간 슬픔에 대해 적대적인 감정까지 갖게 되었다. 슬픔을 내 인생에서 추방시키고 싶었다. 슬픔은 슬픔이란 이유만으로 유죄였다. 회사를 다녀 돈을 많이 벌고 싶었고, 보란 듯이 평안한 얼굴과 마음가짐으로 웃고 싶었고. 시를 위해서가 아니라 제대로 돈을 벌며 살기 위해 시간을 쓰고 싶었다. 10년에 걸쳐 써온 일기장과 습작 노트들을 죄다 갖다버렸다. 가지고 있기엔 너무 무겁고 축축했다. 벗어나고 싶었다. 슬픔이 내 발끝에도 오지 못하도록. 틈을 주지 않았다. 바쁘게 살았고, 웃었고, 즐겁게 지내려고 노력했으며, 회사도 열심히 다녔다. 슬픔이 잠시 내 앞에 앉으려고만 해도 벌떡 일어나서 다른 곳으로 가버렸다. 기회를 주지 않았다. 생각을 단순하게 했고, 얼마 동안 시도 쓰지 않았다.
그렇지만 완벽하게 슬픔을 차단한 인생이란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회의가 들었지만 여전히 슬픈 감정은 두려웠다. 슬픔에 대한 역치가 낮아져 있었다.
꽤 행복한 얼굴을 '겨우'만들어가지고 부암동에 놀러간 어느 날. 우연히 윤동주 박물관에 들리게 되었다. 윤동주라, 윤동주. 내가 슬픔에 젖어 있던 많은 날 '모두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라는 구절에 대해 꽤 오랜 시간을 견뎠었지. 박물관에 전시된 자료들을 보다 나는 어느 시 앞에서 벼락을 맞은 것 같은 기분을 느꼈다. 피하고 싶어 오랜 시간을 공들였는데, 결국 만나버린 인연. 혹은 숙명 같았다.
슬퍼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슬퍼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슬퍼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슬퍼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슬퍼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슬퍼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슬퍼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슬퍼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영원히 슬플 것이요.
-윤동주 '팔복' 전문
시인은 여덟 번에 걸쳐 '슬퍼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라고 말하고 있다. 마치 저주처럼. '저희가 영원히 슬플 것이오'라고 마지막을 못박고 있었다. 세로글씨로 또박또박 쓰여 있는 윤동주의 자필을 보면서. 가난한 시인의 방과 고통스러운 시인의 생 앞에 벌거벗고 서 있는 기분이 들었다. 부끄러웠다. 눈물이 날 것 같은 걸 애써 참았다. 자고로 슬퍼하는 자. 대신 울어주는 자가 시인의 숙명인 것을 윤동주 시인은 척박한 환경에서도 받아들이며 긍정했는데 나는 벗어나기 위해 도망치고 피해 다녔다. 슬퍼하는 일 외에 시인이 할 수 있는 일이 뭐가 있단 말인가? 이 시 앞에서 작게나마 깨달음을 얻는 나는 윤동주의 시 앞에서 다짐했다. 슬픔을 두려워하지 않기로. 슬퍼하는 일을 오히려 복되고 귀한 일로 생각하기로.
사랑이 질병인 것처럼. 내 이십대는 질병과 같았다. 슬픔도 가장 격렬한 슬픔만. 아픔도 가장 치명적인 아픔만 골라 껴안았다. 다시 돌아갈 수 없는 그 시절의 슬픔은 폭죽처럼 터져버렸고, 이미 사라졌다. 시간이 갈수록 폭죽에 대한 기억도, 귓가를 울리던 굉음도 희미해질 것이다.
그러나 한 시절 사랑한 것들과 그로 인해 품었던 슬픔들이 남은 내 삶의 토대를 이룰 것임을 알고 있다. 슬픔을 지나온 힘으로 앞으로 올 새로운 슬픔까지 긍정할 수 있음을. 세상은 슬픔의 힘으로 아름다워진다는 것을 이제 나는, 겨우. 믿는다.
슬퍼하지 않으면 우리는 아이들을 키울 수 없을 것이고, 힘없는 자들을 가여워하지 않을 것이며, 나누지 않고 사랑하지 않을 것이다. 무엇보다 슬퍼 하지 않으면 더이상 어떤 시나 노래도 태어나지 못할 것이다.
우리는 믿어야 한다. 슬퍼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슬픔은 슬픔대로 즐겁다.